브랜드를 '만든다'는 것의 현실
이 글을 쓰는 약 3년하고도 11개월 전 에잇퍼센트에 브랜드 마케터로 합류했다. 효진님의 확고한 신념 아래 탄생한 회사였지만, 정립된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아직 없었다. '이제부터 만들어 나가기만 하면 된다'는 말은, 갓 주니어 딱지를 뗀 나에게 설레는 과제로 다가왔다.
게다가 국내에서 P2P금융업을 최초로 시작했고, 17년만에 새로운 제도권 금융산업으로 진입할 때 최초 등록한 상징성은, '1등', '1호', '1st'라는 타이틀의 파급력을 직전 재직 회사에서 몸소 경험해봤던 내게 너무나 매력적인 포인트였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입사 초기의 의욕은 6개월도 못 가 벽에 부딪혔다. 실적이 생존과 직결되는 스타트업에서 브랜딩은 항상 우선순위 밖이었다. 어찌됐건 내가 속한 팀 이름이 '마케팅팀'이기에 대출과 투자 영업에 필요한 것들을 먼저 챙겨야 했다. 그렇게 대출 모객을 위해 퍼포먼스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던 중,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브랜딩의 빈자리가 선명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질문의 시작,
"에잇퍼센트, 믿을 만한 회사인가요?"

퍼포먼스 마케팅을 통해 많은 유저를 유입시키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 유저가 '처음 듣는 회사'라는 반응을 보였던 것.
당시 포털 지식인에는 "8퍼센트 믿을 만한가요?", "여기 위험하지 않나요?" 같은 질문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기억에 남는 질문이 하나 있다. "8퍼센트에서 대출 받으려는데 괜찮은 회사인가요?"라는 글에 누군가 "중신용자가 8퍼센트 금리면 잘 받은 거죠"라고 답을 달았고, 질문자가 정정하듯 "금리 8퍼센트가 아니라, 8퍼센트라는 회사에서 대출받았다고요."라고 남긴 댓글.
(이런 혼동을 줄이기 위해 이번 리브랜딩에서 브랜드명을 '에잇퍼센트'로 통일했다.)
이처럼 고객의 불안은 단순히 정보 부족이 아닌, 브랜드 인식 자체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핀테크'라는 산업 자체도 여전히 생소했다. 저축은행도, 캐피탈도, 대부업도 아닌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이라는 새로운 업권을 누가 알고 있었을까.
생소한 이름의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거나, 투자를 결심하는 일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브랜드를 정리하고 알리지 못한 대가를 고객에게 떠넘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브랜딩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해내야 하는 필연의 과업이 되어갔다.
우리 브랜드가 놓친 것, 고객은 알고 있다.
대출 서비스에 대해 내부에서는 '한도와 금리만 맞으면 결국 오게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직접 고객과 맞닿는 마케팅팀 입장에선 정성적인 메시지와 신뢰의 맥락이 필요했다.
당시 내부 구성원들은 여전히 '중신용자를 위한 금융 서비스 제공'이라는 창립 초기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고객들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을까?" 그 질문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특히 당시 팀장이었던 보경님은 프로모션이나 아티클을 쓸 때마다 이렇게 되물으셨다. "혹시 우리는 공급자 중심의 시선으로, 고객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가요?" 그 질문은 단순한 체크가 아니라, 우리 브랜드가 진짜 고객의 삶에 닿고 있는지 되짚게 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조직 내부와 고객 관점의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 에잇퍼센트 창립 이래 처음으로 고객과 임직원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브랜드 인식 조사와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서비스 특장점부터 우리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까지 임직원들은 고객과 확연히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에잇퍼센트가 시장에 등장한 후 10년의 세월 동안 기존 금융씬에서도 중신용자를 주목하기 시작했기에 '중신용자를 위한 대출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다지 큰 메리트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서비스 그 자체의 만족감에 대해 표현한 고객이 더 많았다. 신속하다, 합리적이다 등... 오히려 서비스의 기술적 유용성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과연 정성적인 만족도는 없었을까? 우리는 고객 심층 인터뷰를 통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대출의 경우, 다른 금융사와 달리 끼워팔기 없이 정직하게 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특수한 대출 상황에도 물심양면으로 대출이 가능한 방법을 함께 고민해주었던 심사역에게 감동을 받아 대출을 실행한 고객분들이 계셨다. 투자의 경우, 손실이 났을 때 이를 고객에게 투명하게 공유하고 빠르게 조치하는 프로세스를 통해 신뢰가 생겼다는 고객분들이 계셨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을 뿐, 에잇퍼센트는 창립 초창기에 내세웠던 '중신용자, 중수익' 키워드에서 진일보하여 나의 금융 고민에 함께 공감해주는 대출 서비스, 믿을 수 있는 투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성 있는 금융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에잇퍼센트가 새로 태어나야 했던 결정적 이유
문제는 이걸 '알았다고 해서'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스타트업은 항상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10주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현실을 바꾸었다.
핀테크 스타트업이 10년을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였고, 우리는 이 긴 여정을 고객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의 브랜드 애셋으로는 이 이야기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경영진은 판단했다. 지금이 아니라면 다시는 못 할 수도 있다는 각오로, 다음 10년을 위한 새로운 비전과 미션을 수립하고, 그 가치를 담을 수 있는 브랜드를 새로 입히자.
그리하여 시작된 리브랜딩 프로젝트.
곧 열 살을 맞이할 에잇퍼센트가, 자아를 찾아 떠나는 1년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