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의 글로벌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바로 ‘SVB(실리콘밸리은행) 파산’입니다. 파산 전 기준 미국에서 16번째 큰 은행이자,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금융의 상징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그 충격이 더 컸습니다.
SVB는 왜 파산했나요?
SVB는 벤처캐피탈(VC) 전문은행입니다. VC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대출, 예금 서비스를 제공해왔는데요. 고객이 맡긴 예금은 보통 미국 국채, 주택저당증권 같은 장기 자산에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금리 인상 영향으로 스타트업들이 돈을 찾기 시작하면서 위기가 왔습니다. SVB는 고객에게 돈을 돌려주기 위해 미국 국채를 팔았는데요. 채권 가격이 폭락하며 큰 손실을 본 것이죠.
2023년 3월 8일(현지 시각), SVB는 미국 국채 손실과 이에 대한 대책을 발표했는데요. 이후 불안감에 사로잡힌 투자자들의 뱅크런이 시작했습니다. 3월 9일 하루에만 420억 달러가 인출됐고, SVB의 발표 44시간 만에 미국 금융당국의 파산 절차가 시작됐습니다.
SVB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문을 닫은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 이후 역대 두 번째로 큰 은행 파산으로 기록됐습니다. 3월 글로벌 경제 시장 최대 이슈였던 ‘SVB 파산이 남긴 5가지’를 정리합니다.
① ‘420억 달러가 순식간에’ 스마트폰 뱅크런
SVB가 순식간에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으로 ‘스마트폰 뱅크런’이 거론됩니다.
뱅크런(Bank Run)은 ‘은행의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를 말합니다. 은행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사람들은 맡긴 돈을 찾으려고 하는데요. 고객 예금으로 수익을 내는 은행 입장에서 당장 돌려줄 돈이 없을 수 있습니다. 뱅크런은 자금이 부족한 은행의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SVB 파산도 뱅크런이 원인입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이전과 달랐는데요. 스마트폰을 이용한 뱅크런이 발생했습니다. ‘스마트폰 뱅크런’은 말 그대로 스마트폰으로 예금을 대거 인출한 현상입니다.
SVB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스타트업들은 SNS로 이 소식을 공유했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돈을 찾았죠. SVB가 순식간에 파산하게 된 배경입니다. 이처럼 예금을 더 쉽고 빠르게 되찾을 수 있게 되면서 뱅크런 위험을 더 커졌습니다.
② 은행 파산 공포 확산 ‘뱅크데믹’
SVB 파산 여파는 다른 은행 파산으로도 이어졌습니다. SVB 파산 이틀 만에 미국 시그니처은행이 무너졌고,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도 위기에 빠지며 스위스 최대 은행 UBS에 인수됐습니다.
독일 도이체방크의 주가도 폭락했습니다. SVB, CS와 달리 도이체방크는 은행 파산이 우려될 이슈가 없었는데도 위기가 왔죠. 이러한 현상에 은행(bank)과 팬데믹(pandemic)을 합친 ‘뱅크데믹(Bankdemic)’이라는 단어가 생겼습니다. 은행에 대한 공포가 감염병처럼 급속하게 번진다는 뜻입니다.
SVB를 비롯한 파산 은행들이 인수 대상을 찾으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은행들의 불안감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③ 미 예금자 ‘중소 은행 못 믿는다’
미국 예금자들이 대형 은행으로 이동했습니다. SVB 파산 이후 안전한 금융사를 찾아 떠난 것인데요. 가장 큰 이유는 ‘예금 전액 보전’입니다.
미국 정부는 뱅크런 확산을 막기 위해 SVB 예금 전액을 보장한다고 밝혔는데요. 이 조치가 대형 은행으로 가야 안전하다는 인식을 만들었습니다.‘만약 중소형 은행이 파산해도 예금을 전액 보전할 것인가’에 의문이 생긴 예금자들이 돈을 대형 은행으로 옮겼습니다.실제로 SVB 파산 이후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예금이 150억 달러 늘었습니다.
④ 가상 화폐 가격 상승
SVB 파산은 가상 화폐 가격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은행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가상화폐 시장으로 움직였다는 분석인데요. 연쇄파산으로 은행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금융 탈중앙화의 상징 가상 화폐에 돈이 몰렸습니다.
비트코인 가격은 SVB 파산 여파로 3월 10일 약 2,668만 원으로 3월 최저치를 찍었지만 곧바로 반등했습니다. 상승 곡선을 그리며 3월 21일 약 3,677만 원까지 올랐습니다. 11일 만에 37.8% 오른 것이죠. 이처럼 SVB 파산을 계기로 가상 화폐가 다시금 부각됐습니다.
⑤ 예금자보호법 한도 상승 요구
SVB 파산은 국내 ‘예금자보호한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금자보호한도를 1억 원까지 올려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 예금자보호한도
금융회사가 영업정지, 파산 등으로 예금을 지급할 수 없을 경우, 예금보호공사가 금융회사를 대신해 지급하는 금액의 최대한도를 말합니다. 국내 예금자보호한도는 2001년 5,000만 원으로 오른 뒤 20년 넘게 유지 중입니다.
예금자보호한도를 높이면 뱅크런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은행에 문제가 생기거나, 파산해도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의 한도가 높아져 인출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금 보장 한도가 높아지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은행이 고수익·고위험 투자에만 주력하고, 예금자도 위험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높은 수익을 내는 은행을 찾을 수 있죠.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낮은 예금자보호한도를 올려야 한다는 요구는 꾸준히 있어 왔는데요. SVB 파산 이후 여당·야당할 것 없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만큼, 이전과 다른 결과가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SVB 파산 사태는 미국 퍼스트시티즌스의 인수로 한 고비 넘긴 모습인데요. 하지만 사태가 마무리된 것은 아닙니다. 미국 중소은행의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로, 파산 여파가 어떤 분야에 어떤 방식으로 덮칠지 모릅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금융시장 상황을 제대로 알기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