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인가?"에 답하는 시간
브랜드의 정체성을 다시 묻다
BTS RM의 'Persona'라는 노래를 종종 듣는다. 그 첫 가사는 늘 심장을 정통으로 때린다. "나는 누구인가, 평생 물어온 질문." 철학적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의 방향을 끊임없이 점검한다. 그렇기에 평생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살아가는 게 아닐까. 삶의 시간에 따라, 질문에 대한 답도 성숙해지며 달라진다.

브랜드도 다르지 않다. 특히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스타트업은 태생부터 철학을 품고 있다. 이 철학은 브랜드의 방향성을 만들고, 결국엔 고유의 정체성을 세운다.
에잇퍼센트에도 분명한 창업 철학이 있었다. (나는 그 철학에 매료되어 이 회사에 합류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어떤 기사에 몇 줄, 또 어떤 인터뷰에 한 문장. 한 번도 정리된 언어로 다듬어진 적은 없었다.
우리는 그 철학을 브랜드의 언어로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작업은 비전・미션・슬로건 등을 다시 쓰는 일로 이어졌다.
물론 과거에도 미션과 비전은 존재했다.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이 제정될 즈음, 외부 에이전시를 통해 만든 문안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에잇퍼센트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는 괴리감이 컸고, 무엇보다 조직 구성원을 하나로 묶는 힘이 부족한 문장이었다.
야, 이 짓을 왜 시작한 건지 벌써 잊었냐?
Persona 가사 속 이 문장이 깊숙이 꽂힌다. 거기서부터 리브랜딩의 실마리를 잡는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브랜드의 정체성을 다시 묻는 것부터.

브랜드 비전: 정체성과 전략 사이, 균형점을 찾아서
리브랜딩의 첫 단추는, 경영진의 생각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대표 효진님, 부대표 호성님(이하 두 경영진), 보경님과 나(이하 마케팅팀) 네 사람이 수차례 미팅을 진행했다. 그 당시 두 경영진은 향후 수년간의 비즈니스 로드맵을 그리고 있었다. n년 단위로 마일스톤이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었고, 이를 브랜드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리브랜딩을 논의하는 네 사람이 '비전'이라는 단어를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 리브랜딩은 단지 보이는 것을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그 답을 고객과 조직 모두에게 납득시키는 작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이라는 단어 하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리브랜딩의 방향을 결정짓는 열쇠였다.
두 경영진은 비전을 비즈니스 전략의 방향성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마케팅팀은 비전을 기업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미래 지향점으로 정의하고 있었다.
전자의 경우, 비전은 구체적인 '로드맵'에 가까웠다. 후자의 경우, 비전은 포괄적인 '존재 이유'에 가까웠다. 논의는 팽팽했다. 설득과 반박, 문서 공유와 토론이 이어졌다. 서로의 주장이 계속 평행선을 달렸다. 각자의 논리가 타당했기 때문에 더더욱 합의가 어려웠다. 하지만 서로의 입장을 근본적으로 이해해보려는 시도 끝에, 왜 각자가 그렇게 주장하는지를 되묻게 됐다.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타깃과 목적이 달랐다. 두 경영진은 '앞으로 또 다른 10년을 만들어갈 내부 구성원들을 결속'시키는 목적이 있었고, 마케팅팀은 '지금까지 10년을 함께해온 고객'에게 앞으로의 10년에 대해서는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인가'에 목적이 있었다.
이 논의의 맹점은, 우리가 이미 성공한 다른 브랜드의 '비전 구조'에 갇혀 있었다는 점이다. "비전이란 이런 형태여야 해"라는 공식. 브랜드도 사람처럼 다 다르다. 브랜딩에 대한 공식을 만들 수는 있지만, 모든 브랜드에 적용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즉, 비전이 꼭 하나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장 오래 붙잡고 토론했던 지점은 단어 사용에 있었다. 우리가 가려는 방향을 설명할 때, 과연 '레거시 금융'에서 써왔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해도 되는 걸까?
우리는 테크로 금융을 혁신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출발점엔, 기존 금융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이 있었다. 게다가 핀테크에 익숙한 20대부터 전통 금융 문법에 익숙한 70대까지 함께 일하는 에잇퍼센트의 조직 구조상, 내부 구성원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끄는 비전은 일정 부분 레거시 금융 이야기를 기반으로 해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반면, 외부 고객에게 전달할 비전은 달라야 했다.우리가 혁신을 시작했던 이유, 기존 금융이 놓쳤던 틈을 메우고 싶었던 출발점. 그 본질을 잃지 않고 담아내야, 브랜드의 정체성이 명확해질 수 있었다.
결국 우리는 내부용 비전과 외부 커뮤니케이션용 비전, 두 가지 버전을 만들었다. 물론 이 둘이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다. 내부 비전은 조직이 단계적으로 달성해야 할 마일스톤에 가까운 Goal, 외부 비전은 그 목표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방향성이다. 안과 밖에서 바라보는 '미래'는 언어는 달라도, 본질적으로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브랜드 미션: 가능성, 기회, 발견, 발굴, 평가, 최적, 최고, 최선
브랜드의 존재 이유이자 사명인 '미션'. 비전에 비하면 인식의 차이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쉬운 산도 아니었다. 미션은 방향은 명확한데, 언어로 담기가 어려운 과제였다. 경영진이 생각하는 에잇퍼센트의 역할을 고객의 언어로 풀어내야 했다.
최초로 두 경영진이 마케팅팀에 제시한 우리 브랜드의 미션은 다음과 같았다.
저평가된 고객의 이자 부담을 낮춘다.
문장을 보는 순간, 생각이 수없이 오갔다. 공급자 중심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경영진 입장에선 이보다 더 정확히 우리의 실체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케팅팀은 달랐다. 투자 고객이 이 문장을 봤을 때 어떤 인상을 받을까? '저평가된 고객'이라는 라벨이 대출 고객에게 주는 감정은 어떤가?
P2P라는 특성상, 투자와 대출이라는 양 축은 원하는 가치가 극단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평소 마케팅 할 때에는 각 세그먼트에 맞게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면 되지만, 미션은 하나의 문장으로 모든 고객을 껴안아야 한다. 여기서 어려움이 시작됐다.

"'저평가'라는 단어에 대한 인식이 모두 같을까?"
"'이자 부담'은 좀 더 고객 친화적인 말로 바꿀 수 없을까?"
"이게 서비스의 핵심이긴 한데... 이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된 철학이 느껴지고 있는가?"
"그래서 우리는 고객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래서 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가?"
정제된 단어, 정제된 철학
우리는 이 모든 질문을 담아 미션 문장과 함께 서비스 구조를 그려보기 시작했다. 대출은 본질적으로 '평가'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서비스다. 그렇다면 우리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미션 한 줄을 위한 끝없는 아이데이션과 약간의 광기가 서려있다.
우리는 아이돌 연습생을 떠올렸다.(정확히 말하자면 신인 시절 아이유를 주로 언급했다.) 아직 무대에 오르지 않았지만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 우리는 투자 고객이 누군가의 가능성을 믿고, 그 가능성에 자금을 보태는 과정을 하나의 서사처럼 그렸다. 이 시스템에서 에잇퍼센트는 가능성 혹은 기회를 찾아주고, 이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다른 금융기관이 보지 못한 부분을 우리는 본다. 에잇퍼센트는 단지 금융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미래를 함께 믿어주는 회사다. 이 철학을 언어로 옮기기 위해, 우리는 세 가지 핵심 질문을 던졌다.
고민의 흔적: 단어를 고르는 3가지 질문
1. 우리는 '발견'하는가 / '발굴'하는가 / '평가'하는가 → 우리는 '발견'한다
에잇퍼센트는 고객 내부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가능성을 '존중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가능성은 판단하거나 점수 매길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발견함으로써 기존 금융이 보지 못한 면을 보여준다.
2. 우리가 찾아내는 것은 고객의 '가능성'인가 / '기회'인가 → 우리가 찾아내는 것은 고객의 '가능성'이다
기회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지만, 가능성은 그 사람 안에 이미 존재한다. 에잇퍼센트는 바로 그 가능성을 꺼내고 확장시킨다. 우리가 보는 건 '기회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3. 고객이 누리는 금융은 '최고'인가 / '최선'인가 / '최적'인가 → 우리를 통해 고객이 누릴 금융은 '최적의 금융'이다
우리는 모든 고객에게 최고의 조건을 약속하진 않는다. 다만 각자의 상황에 가장 알맞은 해답을 함께 찾는 금융은 제공할 수 있다. 나에게 맞는 정답을 찾아가는 여정. 에잇퍼센트는 그 길을 함께 걷는다.
미션, 에잇퍼센트의 철학을 담다
그렇게 해서 정리된 우리의 미션은 이 한 문장이다.
"고객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최적의 금융을 실현한다."
처음 제시되었던 '저평가된 고객의 이자 부담을 낮춘다'는 문장에서 이 문장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에잇퍼센트의 철학, 존재 이유, 일하는 방식을 단 한 줄에 응축한 문장이다. 우리는 단어 하나하나를 고르기까지 수많은 맥락을 되짚었고, 작은 차이들이 브랜드 깊이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그렇게 만든 미션은, 브랜드의 깊이와 방향을 동시에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문장이 되었다.